글을 쓰고 싶어지는 날은 전자기기와 멀어지는 날이다. 혹은 할 일이 없는 날이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으면 온갖 잡다한 생각이 밀물처럼 몰려온다. 그리고 이를 기록하고 싶어진다.
늘 그랬다. 한 달 전쯤일까, 밤에 핸드폰 충전을 잊고 충전기를 들고 가지도 않은 적이 있었다. 퇴근길에 배터리가 없어 꺼진 핸드폰을 가방 안에 고이 모셔두고 집으로 향했다. 핸드폰을 내려놓으면 주변 사람들과 소리가 들린다고들 하던가. 나도 처음에는 모두가 전자기기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이내, 모든 현실감은 멀어지고 머릿속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때 머릿속에서 쓴 글은 덧없이 사라졌다. 이제 와서 떠올리려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1시간이란 퇴근 시간 동안 굉장히 다양한 철학적, 과학적, 망상적 주제를 떠올렸음에도. 이를 한 번 더 정제하여 단어와 단어 사이를 제대로 이어붙였음에도. 인간의 기억이란 그렇다. 아무리 정돈해도 기록하지 않으면 흘러갈 뿐이다.
프리라이팅과 일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일기는 오늘 있었던 일과 그에 대한 생각, 감정을 적는다. 프리라이팅은 있었던 일과 연관이 있기도, 없기도 하다. 다만 스쳐지나가는, 덧없이 사라질 수 있는 사고나 아이디어에 대해 적는다. 물론 이는 내가 생각하는 정의일 뿐이다. 누군가는 프리라이팅을 단문소설을 쓰듯 쓸 거고, 누군가는 나처럼 쓰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야말로 프리(free) 라이팅이 아닌가.
나는 이런 글에 제목을 붙이기가 어렵다. 문장력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듣기는 하지만 이해하기 쉬울 뿐. 비유도, 많은 걸 한 단어나 문장으로 함축하기에도 많이 모자르다. 따라서 단순히 무제, 혹은 그 날의 날짜로 남겨둔다. 물론 붙이라면 붙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함축하고 싶지 않다. 그저 늘어놓고 싶다. 나는 잘 설명하지 못하고 말이 늘어지는 걸 콤플렉스로 여긴다. 그럼에도 축약하지 않고 늘어놓는 걸 기쁨으로 여긴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오늘은 갈 곳이 있어 15분이란 시간 동안 평소보다 더 정제되지 않은 글을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타임어택을 싫어하는 편인데, 오늘은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미래의 내가 이 글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흑역사라고 부끄러워하면서도 꼼꼼히 읽을 내가 떠오른다. 늘 그래왔으니까. 조금 부끄럽더라도 나이니까. 내 변화를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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